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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 고전 200권 읽고 토론”

세인트존스칼리지의 교육법

과학기술이 그 어느 때보다 중히 여겨지는 시대에도 교양교육은 필요할까. ‘문송(문과라서 죄송)’이란 말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은 과연 쓸모가 있을까. 미국의 명문대학인 세인트존스칼리지는 이런 편견을 완전히 뒤엎는다. 이 학교엔 철학·경제학 같은 세부 전공이 없다. 모든 학생들의 교육과정은 하나로 동일하며 졸업 때 ‘인문교양학사’ 학위를 받는다. 강의실에선 그 흔한 ‘○○학 개론’ 류의 서적은 펴보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늘 세계 최고 대학 중 하나로 꼽힌다.

방한한 카넬로스 총장 인터뷰
교양교육만으로 명문대 반열
과학에 영혼 불어넣는 건 인문

그 비결은 200권의 고전이다. 학생들은 대학 4년간 소크라테스부터 니체까지 오직 책을 읽고 토론하며 에세이를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 졸업생들은 잘 나가는 IT기업부터 의학전문대학원, 로스쿨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한다. 지난 9월 뉴욕타임스는 세인트존스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모순적인 대학”이라고 평했다. “가장 미래를 내다보는 대학이지만, 그 방법은 오로지 과거를 깊이 탐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국제교양교육포럼 참석차 방한한 이 대학의 파나이오티스 카넬로스 총장을 만났다. 이 포럼은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주최하고 한국교양기초교육원이 주관했다. 주제는 ‘변화의 시대, 교양교육의 재발견’이다.

카넬로스 총장은 구글의 연구 결과를 먼저 화두로 꺼냈다. “구글은 10년 동안 어떤 직원들이 높은 성과를 내는지 조사했다. 처음엔 공학적 지식을 가진 인재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협력적 마인드와 창의성, 소통능력을 갖춘 이들이 더 크게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이런 능력은 오롯이 인문교양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역량”이라고 말했다.

Q. 현대 사회에선 코딩처럼 과학기술 지식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A. “과학기술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바탕은 인문학이다. 과학과 기술은 ‘어떻게(how)’에 대한 답을 주지만, 인문은 ‘무엇(what)’을 위한 고민을 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과학에 가치를 부여하고 기술에 영혼을 입히는 것은 인간이다.”

Q. 한국엔 ‘문송’이란 말이 있다, 인문학 전공자는 일자리조차 얻기 힘들다는 뜻이다.

A. “미국도 그랬다. 그러나 이젠 인문교양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공계 지식만 있으면 시야가 좁아져 혁신과 창의성이 나올 수 없다. 우리는 인문학만 공부하는 게 아니다. 과학기술에 연결되는 지점도 함께 탐구한다. 졸업생 중 상당수가 컴퓨터공학·의학 등 분야로 진출하는 이유다.”

Q. 세인트존스에선 정말 전공을 안 배우나.

A. “전공 자체가 없다. 모든 학생들은 동일한 커리큘럼으로 4년을 지낸다. 1학년 때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부터 시작해 그리스 고전을, 2학년 때는 중세와 르네상스 학문을 배운다. 3학년 때는 코페르니쿠스부터 과학을 만나고 4학년 때는 니체와 같은 근대 철학가 등을 접한다.”

Q. 200권은 누가 정하나.

A. “1937년 현재의 교육과정을 시작했다. 그 때 정한 인류의 고전들을 아직도 배우고 있다. 훌륭한 책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시간의 시험’을 견뎌야 한다. 100년 이내의 책들이 고전으로 들어오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한다.”

Q. 한국에선 교양 교육이 낯설다.

A. “한국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성공에 크게 집착하지만 그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성공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지식 습득 교육만으론 안 된다. 미래엔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것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이해가 전제돼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인문교양 교육이 필요하다.”

Q. 대학은 왜 존재하는가.

A. “대학은 인간을 성찰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비판적 사고방식을 기른다. 세인트존스는 학생이 이런 판단능력을 키우도록 돕는다. 우리가 교수를 ‘professor’가 아닌 ‘tutor’라고 부르는 이유다. 교수는 학생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단지 도울 뿐이다.”

글 윤석만 기자
제공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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