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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집중하고 미래 불안도 떨치는

‘욜로(YOLO)족’의 소비생활

*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의 줄임말. 지금의 행복을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질구레한 소비 속에서 길을 잃다

대체 어디에 얼마를 쓰고 살기에 한 달에 10만원도 저축하지 못하고 사는지가 궁금해서 가계부를 써보기로 한 유나선(가명, 28세) 씨, 지난 한 달간의 지출내용을 정리하다가 그만 던져버리고 말았다. “뭐 그리 큰돈 쓴 것도 없잖아? 사치는 고사하고 입고 싶은 옷 한 벌, 가보고 싶은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했어. 그런데 왜 맨날 돈이 부족한 거야!” 가계부엔 온통 소소한 필요 지출들 뿐 뭐하나 큰 액수의 지출조차 없다.

매일 점심을 사 먹고, 커피를 마시고, 편의점에 가서 간식 좀 사거나 다이소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 친구를 만나 같이 저녁 좀 먹는 일상적인 지출뿐이다. 그런데 가끔 방을 정리하다 보면 샀는데 또 산 화장품이나 액세서리들, 가격표도 뜯지 않은 채 여기저기 널려있는 옷들, 사놓고 읽지도 않는 책들이 가득하다. “도대체 저게 다 얼마야. 이러니까 돈이 없지”라며 절로 한탄하게 된다.

딱히 사치하거나 낭비하는 건 없는데 지나고 보면 잡동사니 소비들을 일삼으며 탕진잼(소소하게 탕진하는 재미)에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효율적인 돈 관리를 위해 다시 가계부를 쓰다 보면, 역시나 자질구레한 필요 지출 내용만 확인될 뿐 어디 줄일 데도 마땅치 않고, 괜히 “돈! 돈!”하다가 마음만 조급해진다. 크게 돈이 모이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정신 건강만 나빠지는 기분이라, 다시 가계부는 집어 던지게 된다.

[충동성에서 비롯한 소소한 소비는 행복감을 주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는 크게 욕심을 실현하는 소비조차 해 본 일이 없다. 다만 사는 데 이래저래 돈 쓸 일이 많을 뿐이다. 그러나 아메리카노보다 더치커피가 맛있어서, 다이어트를 해야 하므로 건강식을 먹어야 해서, 기분이 상한 날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기 위한 당 섭취를 위해서 우리의 ‘필요’는 점점 더 늘어나고, 조금 더 비용이 추가될 뿐이다.

소소한 소비는 얼핏 보면 낭비는 아니지만, 나중에 보면 불필요한 물건일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낭비로 귀착되곤 한다. 일단 사고 나서 후회하게 된다면 돈도 없어지고 소비의 가치와 만족도 얻지 못한다는 점에서 감정적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또한, 계속 현재의 소소한 만족을 위해 소진되는 돈은 미래에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을 준비하기 위한 자금 부족과 연결되기 때문에 괜한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중되기도 한다.

지금의 행복을 추구하는 ‘소소한 소비생활’

인간의 본성은 어쩌면 ‘조삼모사(朝三暮四)’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보이는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상황을 비유하는 말이지만, ‘지금 3개, 나중 4개’보다 ‘지금 4개, 나중 3개’가 일단 낫게 느껴진다. 나중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 확보할 수 있는 건 확보하고 누리는 것이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되는 진화의 방향이었을까. 덕분에 인간 대다수는 ‘나중의 거대한 보상’보다 ‘지금의 소소한 보상’에 쉽게 빠져든다.

나중에 500만원을 들여 유럽여행을 하는 것보다 오늘 마음에 드는 립스틱 한 개, 성능 좋은 헤드셋이 당장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단 얘기다. 대부분의 ‘행복학’은 ‘지금-현재’를 누릴 줄 아는 지혜를 가르친다.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일들에 대한 ‘염려’를 접어두고 지금 소소한 일상 속에서 순간순간 멈춰 서서 행복을 음미하라고 한다. 대단히 동의하지만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며들어 떨쳐내기 어려운 ‘미래불안’이 내 영혼을 얽매여오는 건 상쾌하게 해결되지 않는다. 최근 떠오르는 욜로(YOLO)족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만족스러운 순간에도 습관처럼 이렇게 되묻게 된다.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현재의 소소한 소비를 줄여 미래의 보상을 설계한다는 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마시멜로 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갈수록 이 ‘인내’의 결실을 맛보기 전에 현재의 소소한 성취에 대부분 돈을 써버린다는 데서 소비는 자주 행복감으로 이어지지 못한다.

피어스 스틸 캘거리대 조직행동학 교수는 인내 없이 즉각적인 욕구에 따라 어떤 행동을 하고자 하는 것은 ‘충동성(Impulsiveness)’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충동성이 낮은 사람은 장기목적달성을 위해 참을 줄 안다. 충동성이 높을수록 불안감을 느낄 때 무기력해지는 경향이 있고, 장기목적달성 같은 과제 수행에서 오는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소소한 ‘성취’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미래 계획은 현재 소비를 줄인다

충동성은 자신의 선택과 행동이 야기할 결과를 분명하게 보지 못하는 ‘일시적 근시안(Temporal myopia)’을 초래한다. 이런 상태에서 미래의 자신에 대한 비전은 더 추상적이고 거리를 두게 되는 경향이 있으며, 정서적 연결성이나 친밀감도 덜 했다고 한다. 일시적 근시안은 현재의 높은 스트레스가 원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먼 미래의 걱정거리보다 일단 눈앞의 스트레스 해소에 더 집중하게 되고, 그럴수록 급박한 현재의 보상으로서의 ‘소소한 지출’이 증가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현재의 노력과 미래의 보상이 서로 연결되지 못하면 결국 현재의 노력에 대한 현재의 보상을 추구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래의 성취는 더욱 멀어지고 따라서 미래불안도 계속 증가하게 될 뿐이다.

현재 버는 빤한 돈으로 ‘현재의 소비 만족’과 ‘미래의 재무목표 달성’ 둘 다를 이루려면 얼마 정도의 비율로 배분하는 것이 적당할까. 7:3 또는 8:2 정도일까? 스스로 이루고 싶은 것이나 원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나열해보면 미래를 위해 얼마의 자금을 지출 유보(?)해야 할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미래의 자신과 정서적 연결성을 강화할수록 현재의 소비는 박탈감 없이도 제한될 수 있다. 소비만이 보상은 아닌 셈이다.

글 박미정
제공 : 머니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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