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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을 길 많아진 서울,

이젠 ‘이야기 거리’를 채워라

걷는 도시가 미래다 ①

서울 인사동길은 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과 정장을 입은 직장인이 공존한다. 600m의 길 곳곳에 한국의 과거와 현재, 문학과 미술이 넘쳐난다. 시인 이생진은 “조선시대 관인방(寬仁坊)의 인(仁)과/대사동(大寺洞)의 사(寺)가 만나/인사(仁寺)라 하였으니/거기 가거든 반갑다고 인사(人事·仁寺)나 하라”(2006년 시집 『인사동』)고 노래하기도 했다.

20년간 보행전용거리 28만㎡ 생겨
인사동길은 외국인 모이는 명소로
도시 자체가 이야기인 유럽처럼
역사·문화 담은 즐길거리 늘려야

17일 인사동길을 걷는 시민과 외국인들의 표정은 화사했다. 미술관과 공예품 가게 등을 따라 난 폭 10여m 거리에는 여유와 이야기가 가득했다. 서울은 물론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이름을 알리게 된 인사동길의 변화는 20년 전 시작됐다. 이 길은 1997년 4월 서울시가 첫 번째로 지정한 ‘차 없는 거리’(현 보행전용거리)다. 매일 오전 10시~오후 10시에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차가 사라진 거리는 시민들의 삶과 한국의 역사, 문화와 예술로 채워졌다. 30년째 갤러리를 운영하는 윤모(60)씨는 “경적이 사라지자 여유가 생겨났다. 도로가 쾌적해지고 걷기 좋아지면서 사람도 늘어났다”고 회고했다. 종로구 토박이 김영호(48)씨는 “예전 인사동이 행인의 길이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와서 머무는 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보행자를 중심에 둔 문화가 자리를 잡은 덕분이다.

인사동길을 시작으로 서울시의 보행전용거리는 20년 만에 28만1015㎡로 늘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물리적 공간보다 중요한 건 질적인 변화라고 지적한다.

서울시 “삭막한 출근길, 걷기 좋은 길로”

오성훈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연구위원은 “보행전용거리 대부분이 차량 흐름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이른바 ‘틈새 구간’에만 지정돼 서로 단절돼 있다. 보행자를 고려하지 않은 바닥 재질, 조경 시설 위치 등도 불편함을 준다”며 “전시성에서 벗어나 실질적으로 보행자를 생각한 시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걷기 좋은 도시’를 향한 대장정에 나선다. 오는 20일 개장하는 ‘서울로 7017’(서울역 고가 일대·8806㎡)은 그 새로운 시작이다.

시는 지상 17m에서 바라보는 서울역·남대문 일대 풍광이 시민들을 불러 모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전체 1024m 구간에 228종 2만4085주의 나무를 심었다. 1970년에 만들어진 고가도로는 서울에서 자라는 모든 종류의 나무를 볼 수 있는 공중 수목원으로 바뀐다. 이방일 서울시 보행정책과장은 “삭막한 도심의 출퇴근 길이 ‘찾아가 걷고 싶은 길’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몰리는 유럽 국가들은 도시 자체를 거대한 이야기와 볼거리로 채우고 있다. ‘즐길거리’가 있는지 여부가 보행전용거리의 성공 포인트다. 서울의 청계천은 인사동과 함께 성공 사례로 꼽힌다.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의 저자 제프 스펙은 청계천의 성공 요인으로 ‘천(川)’이란 확실한 즐길거리와 주변 도심부의 풍부한 스토리를 꼽았다. 이신해 서울연구원 선임위원은 “도심 보행로엔 그곳만의 ‘매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변의 역사·문화적 장소와 연관된 보행 디자인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세먼지·교통불편 해소는 숙제

‘걷는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한 길은 순탄하지만은 않다. 기존 도로를 보행전용거리로 바꿀 때마다 차량 운전자들의 반발이 거세다. 보행전용거리가 순식간에 인근 상점에서 내놓은 판매물품으로 채워지기도 한다. 미세먼지 등 나빠지는 대기 질로 실외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날도 늘고 있다. 시가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가 복합된 고차방정식인 셈이다.

윤준병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우회로 확보, 대중교통 이용과 보행이 편하다는 인식 개선, 친환경 교통수단 도입 등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글 조한대 기자
제공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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