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뉴스 > 저출산 고령화에 일손부족 시달리는 일본, 재택근무 빠르게 확산

저출산 고령화에 일손부족 시달리는 일본

재택근무 빠르게 확산

도요타, 사무직 1주일에 한번 2시간만 출근하게
이온슈퍼, 한달에 5일 점장까지 재택근무 허용
美 실리콘밸리 탄력근무제 일반화

일본의 거대 유통업체 ‘이온’의 의류판매 과장인 마에노 리에 씨(37)는 매주 월요일엔 집에서 일한다. 이와테(巖手) 현 이치노세키(一關) 시에서 자녀 셋을 키우며 간호가 필요한 아버지도 근처에서 모시는 그에게 일주일에 하루의 재택근무는 여간 요긴한 게 아니다.

월요일엔 집에서 보고서를 쓰고 e메일을 주고받으면서 근무하는 것이다. 짬짬이 아버지를 돌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그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 인터뷰에서 “재택근무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면 일을 그만둬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에서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재택근무 혁명’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일본 제조업의 대표 주자인 도요타자동차를 비롯해 3대 메가 은행도 재택근무제를 도입한다.

도요타자동차는 입사 5년 차 이상 사무직과 기술직 사원 2만5000명을 대상으로 이달부터 근로방식 다양화 실험에 들어간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사무직의 경우 업무는 온라인으로 처리하고 일주일에 한 번 2시간만 출근하면 된다. 회사는 정보 보안을 위해 단말기에 기록이 남지 않는 클라우드 기반 컴퓨터를 지급하기로 했다.

새 제도를 통해 업무 경험이 풍부한 중견 직원이 육아나 부모 간병 등을 이유로 회사를 떠나는 것을 막는 게 가장 큰 목표다. 8월 15일 현재 근무시간과 관리시스템을 수정 보완하는 작업을 끝냈고 노동조합과 업무 조건에 대한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회사 측은 제도가 궤도에 오르면 상시 수백 명이 참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온’의 도호쿠(東北) 지역 계열사인 이온슈퍼센터는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직원들이 대거 회사를 떠나자 각 점포의 과장, 부점장은 물론이고 점장까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이 지역은 전국에서 인구 감소율이 가장 높았고, 직원이 육아나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두면 당장 점포 운영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일손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온슈퍼센터는 점장 등 관리직에게 한 달에 최대 5일간 재택근무를 인정해준다. 약 300명의 대상 인원 중 30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점장, 과장 등의 상세한 업무 내용 일람표를 작성해 누가 빠져도 아래 직원이 메울 수 있게 했다. 상사의 직무 내용을 자세히 파악한 종업원들의 성장이 빨라졌고, 승진에 소극적이던 우수 여성 인력이 관리직에 도전하는 등 예기치 못한 효과도 얻었다.

은행권에서는 미쓰비시도쿄UFJ은행과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올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데 이어 미즈호은행도 연내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근로자는 일과 가정을 함께 지키고 기업은 좋은 인재를 확보해 생산성을 올리는 ‘윈윈 실험’이 한창인 셈이다. 일본 정부는 8월 개각에서 ‘일하는 방식 담당’ 장관을 신설했다.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이 몰려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근로자가 근무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탄력근무제가 일반화돼 있다. 벤처기업들은 직원들이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 속에 창의력과 집중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구글은 탄력근무제에 더해 근무시간의 20%를 하고 싶은 일에 쓰는 ‘20% 프로젝트’를 도입해 지메일, 구글어스와 같은 히트작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실리콘밸리의 근무시간 유연화 정책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2000년대 창업 붐을 타고 몰려들었던 벤처기업의 젊은 개발자들이 이제는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중장년이 됐고, 일과 가정을 양립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 업체인 CB인사이츠가 지난해 말 4040명의 실리콘밸리 창업자를 상대로 조사한 결과 63%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의 여성 근로자 비율은 20, 30%로 다른 지역에 비해 비교적 낮지만 이들을 중심으로 유급휴가 및 유연근무제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고 전했다.

탄력근무제는 미국 전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여론조사기관 갤럽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미국 노동자 가운데 37%가 자신의 노동 계약에 탄력근무 조항이 포함됐다고 답했다. 1995년 조사에는 단 9%만 이에 답했지만 20년 만에 4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구인구직 업체인 플렉스잡스의 브리 레이놀즈 선임 분석가는 “탄력근무제는 근로자가 가정에 더 충실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스트레스도 줄여 준다”며 “불필요한 사내 정치에 소모하는 시간도 막을 수 있어 생산성이 증가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제공 :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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